전에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1920~30년대의 종로, 명동, 혜화의 길을 그와 함께 걷는 기분이 들었었다.
오래된 길이란 겹겹히 세월이 쌓이는 곳이었다.
유희열이 걸은 밤 산책 길도 주로 강북의 길이다.
구획화된 길이 아닌 구불구불한 골목의 길들...
그곳을 살았던, 걸었던 사람들의 켜켜이 쌓인 추억을 느낄 수 있는 길들...
내 세월에 쌓인 길들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
여유롭게 찬찬히 둘러보며... 언제쯤 그런 마음의 여유가 생길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내가 좋아하는 게 있다면 걷기... 또는 산책이다...
그러나 밤에 산책을 마음편히 다녀본 기억은 없다.
아무리 안전한 우리나라라 하더라도, 여자들이 마음 편히 동네 골목골목을 산책하기란 흠...
그렇지만 고즈넉한 늦은 밤이나 새벽에 걸어보고 싶다. 동행과 함께.
다만 발걸음이 빠른 사람은 싫다.
내가 발걸음을 느려서인 이유도 있지만, 조급한 발걸음을 하는 사람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
물론 나도 출근 길은 정녕 열심히 조급히 걷는다 ㅎㅎ
유희열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걸은 그 길 중 나도 걸어본 길도 있고, 걸어보고 싶은 길도 있다.
유희열 처럼 어릴 적 내 동네를 걷는 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너무 낯설기만 할까? 언제고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가지 않게 되는
어릴 적 내 동네...는 '목동' 및 '등촌동'이다.
초중고를 다 그 동네에서 나왔으니...
지금 살고 있는 분당은 계획 도시라 깨끗하고 정갈한 산책길이 잘 되어 있으나
아무런 추억 쌓이지 않은 ... 그냥 참 살기 좋은 동네일 뿐.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0_kB7f3Zz8mdHvZgrpLlJZEg11V0vr-J
종로구 청운 효자동 - 마음과 기억의 시차를 맞추는 시간
용산구 후암동 - 느리게 걸어야만 겨우 보이는 풍경들
중구 장충동 - 비 오는 밤, 성곽길을 걷게 된다면
중구 명동 - 우리, 명동 산책 갈래?
홍제천 - 엄마에게 걸음으로 부치는 밤 편지
관악구 청림동 - 길은 언제나 삶을 가로지른다
동대문구 천장산 하늘길 - 산도 인생도, 잘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행촌동~송월동 - 도시의 혈관이 지나는 골목에서
강남구 압구정동 - 산책의 끝은 언제나 집
나 또한 이삼십 대에는 나름 힙스터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스쿠터를 타고 이 거리, 저 거리를 활보하면서 나와 닮고 나와 다른 청춘들과 어울렸다.
김지운 영화감독, 상이 형, 종신이 형, 동률이, 적이와 약속 없이 오다가다 마주치기도 하고, 수다를 떨고 술잔을 기울이고,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던, 그런 시절이 었었다.
그러는 동안 사람이 풍경을 만드는 이곳, 압구정동에서 수많은 음악과 영화가 탄생했고 문화적인 흐름도 만들어졌다.
이 거리는 되살아나 여전히 청춘들로 가득하지만, 더 이상 나의 거리고 아니다. 이제 나는 무서워서 스쿠터도 못 탄다.
-p. 151
성동구 응봉동 - 빛과 물과 가을이 쉼 없이 노래하는 밤
금남시장을 빠져나와 금호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서자, 멀리 어두운 한강과 동호대교 불빛이 보였다.
금남시장에는 여러 번 왔어도 이 횡단보도를 건너보기는 처음이다.
얼마 걷지 않아 산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이 눈에 띄었다.
"성동 응봉산 산책로"라고 쓰인 표지판에 '서울숲과 남산이 연결되는 길'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
응봉산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한 번쯤 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한데......
...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런 아름다운 전망은 처음이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교각들의 휘황한 불빛,
강변도로들을 밝히는 무수한 가로등 불빛,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달리는 자동차 불빛,
그리고 한강 너머로 반짝이는 아파트와 빌딩 숲이 아름다운 빛의 궤적으로 어우러진 풍경.
한강은 그 색색의 빛을 전부 끌어안고서 서울의 밤을 노래하고 있었다.
송파구 방이동 - 모든 뻔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성북구 성북동 - 기억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지켜낸 동네
종로구 종로 - 옛것과 새것이 뒤엉킨 시간의 교차로
종로구 창신동- 각자의 치열함이 빛을 내는 거리
홍대입구~합정동 - 시시한 이야기가 그리운 밤에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다니는 희수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그 친구랑 툭하면 여기를 걸어 다녔다.
둘 다 돈이 없어서 어디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람 구경하며 그냥 걷기만 하다가 헤어졌다.
한참 걷고 나서 "오늘 예쁜 사람 많이 봐서 되게 좋다" 그러고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진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그런 시시껄렁한 시간과 얘기를 나눌 친구가 점점 없어진다는 거다.
- p.254
영등포구 선유도공원 -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상처가 흉터로 아물면 통증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로 가리고 덮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좋은 시간은 좋은 시간대로, 나쁜 시간은 나쁜 시간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다.
- p.273
※유희열
가수, 작곡가, 엔터테인먼트 '안테나' 대표
1971년 4월 19일
서울대학교 작곡과 학사
1994년 토이 1집 앨범 [내 마음속에]